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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참다 나중엔 늦은 시간에 오는 그 선배의 전화는 받지 않게모아텍 주식
됐다. 본인도 용건이 있어 전화한 게 아니니 딱히 볼멘소리를 하진 못했더랬다. 어느새 전화 횟수가 줄어가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차곡차곡 벼르는 마음을 쌓아두고 있었다는 걸 안 건 나중이었다.
불시에 사건은 터졌다. 실제로 중요한 업무 때문에 야간에 그가 나에게 전화를 할 일이 생겼던 거다. 여느 때처럼 또 술주정인가, 싶어 바다이야기황금고래
외면하고 잠든 게 실수였다. 그는 내게 섭섭했던 감정을 꼬장꼬장하게 얹어 부장에게 이르듯이 고했다. “지은이가 퇴근 시간만 지나면 중요한 일로 전화해도 안 받더라고요. 요즘 애들은 이래서 문제야.”
그의 투덜거림은 시작에 불과했다. 회식에서도 “업무 전화도 안 받는 후배” 타령을 농담처럼 하고, 취재원들 앞에서도 우스개처럼 불평을 늘어놨다1억원굴리기
. 소소하게 촉발한 미움이 내 안에 똬리를 틀었다. 사람에 대한 혐오가 생기니 일에 영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렇다고 아랫사람 처지에 분위기를 망치고 싶진 않아 단체로 볼 때는 억지로 웃었다. 외부로 분출되지 못하는 감정은 몸 안으로 파고들어 일상을 헤친다. 어느덧 그는 같은 공간에만 있어도 내게 스트레스를 주는 존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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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폴라리타 서래마을 본점에서 후식으로 주문한 티라미수. 함께 간 후배들에게 칼럼을 올린다면 꼭 사진을 싣겠노라고 약속했다.
가지치기가 안되는 증오에 무한정 나를 노출하는 일은 몹시 유해하다. 그런 생각에 선배와 함께 참석하기로 돼 있던 업무상 술ELS청약
자리를 일부러 빠졌다. 야근이 있다는 핑계로 따로 카페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화로 끓는 속을 달래려 티라미수를 시켰다. 커스터드 크림이 들어간 마스카르포네 치즈의 뭉클하고 달달한 맛 위에 쌉쌀하게 얹힌 커피 가루.
티라미수의 깊은 풍미는 치즈케이크의 달콤함과 커피 시트의 씁쓸함이 어우러져서 나온다. 물론 쌉싸래한 맛은 입맛을 돋울 정도로 조금만 깔리고, 달달한 치즈 크림의 비율이 훨씬 높아야 한다. 인생의 쓴맛이 딱 티라미수의 커피 맛 정도라면 얼마나 좋을까. 삶의 풍성함만 살짝 거들어줄 정도라면. 하지만 내가 키우는 분노는 왜 이리도 적정선을 가늠하기 어려운 건지. 어질한 머리를 가누며 당을 충전할 태세를 갖췄다.
한 입 커다랗게 잘라 입에 넣은 찰나. 순간 휴대전화를 보고 나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다 코코아 파우더를 들이켜 기침을 연속 내뱉었다. 기껏 즐겁게 오늘을 마무리하려고 시동을 걸고 있는데, 가장 보고 싶지 않은 이름이 기어이 하루 끝을 비집고 들어왔다. 괜히 받았다가 어디냐고 물으면 어쩌지. 하지만 전화를 무시했다가 벌어진 지난번 일을 떠올리니 또 그럴 용기가 안 났다.
“요새 내가 좀 괴롭혔지? 미안해. 내 성격 더러운 거 알잖아. 착한 네가 이해해라” “마무리된 것 같은데 안 멀면 잠깐 들르지? 우리 2차 장소로 넘어왔어.” 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들리는 얼큰한 음성에 소름처럼 짜증이 올라왔다. 화해의 제스처로는 최악이었다. 자기객관화가 되는 쿨하고 담백한 사람인 양 서두를 꺼내는 방식에다, 앞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으면 거절하지 못하리라는 계산이 담긴 암묵적 강요까지. 가까스로 유지해온 인내의 끈이 툭 하고 끊어졌다.
“아니요. 전 됐습니다.”
뇌가 어떤 판단을 내리기 전에 입이 먼저 움직였다. 본능적으로 무의식이 친 보호막 같았다.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최초로 상사의 제안에 정면으로 “싫다”는 의사를 표한 순간이었다.
아마 상대방은 무안해했던 것 같고, 급격히 기가 죽은 목소리에 나도 조금 미안해졌던 것 같다. “사실 몸이 안 좋아서요” 등의 변명을 붙여볼까란 생각이 들었다가, 그저 입을 다물었다. 침묵이 이어지자 그는 어쩔 줄 몰라했고, 허둥지둥 전화를 끊었다. 그 선배와 나의 마지막 통화였다. 이후 필요할 때는 메신저로만 대화를 나눴고, 이직한 후에는 아예 그의 번호를 차단해버렸기 때문이다.
명동 카페 코인의 티라미수. 모두가 ‘티라미수’라는 단어를 들으면 떠올릴 법한, 매우 정석으로 만들어진 맛과 모양의 티라미수다.
요리에 한없이 미숙한 나도 티라미수는 단순한 방법으로 만들어 본 적이 있다. 생크림과 크림치즈를 섞어 부드러운 필링을 만들고 유리 그릇에 차곡차곡 채우는 방식이다. 다만 중요한 건, 에스프레소를 적신 카스테라로 겹겹이 바닥을 잘 깔아두는 것이다. 그래야 형태가 무너지지 않고 그럴듯한 모양새를 만들어낼 수 있다.
모든 관계를 몽글몽글하고 달달한 크림치즈로 채우는 건 불가능하다는 걸 그땐 몰랐다. 누군가와 불화를 유지하는 일은 부담스럽지만, 충돌에 맞서기 싫어 덮어두면 나를 보호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 애매하게 웃으며 넘긴 형체 없이 축적된 시간 속에서 나의 감정은 균형을 잃어가고 있었다. 인생의 단맛과 쓴맛이 티라미수 정도의 비율이길 바란다고 했지만, 사실 난 그만큼의 씁쓸함도 견뎌낼 자신이 없었는지 모른다.
쓰디쓴 커피로 적신 벽을 세워두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 선배와의 침묵을 견디고 난 후 내린 결론이었다. 관계의 불협화음에서 나오는 어색한 공백을, 억지로 넉살과 웃음을 만들어 채워주려고 하지 말아야겠다 싶었다. 상대방과 내가 만들 수 있는 하모니가 이게 전부라면 차라리 침묵으로 대체하는 게 최선이다. 노력할 가치가 있는 관계들이 충분히 많은데, 가능성이 희박한 쪽에 모든 에너지를 쏟는 건 가성비가 너무 떨어진다.
언젠가부터는 나에게 마땅히 미안해야 하는 사람이 불편해할 때, 그 죄책감을 덜어주려 애쓰지 않는다. 괜찮지 않은 건 괜찮지 않은 대로 둔다. 상대를 눈치 보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 또 나를 신경 쓰이게 하기도 하지만, 나의 삶의 종합적인 밸런스를 위해 누군가를 거부하는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한다. 이건 내가 생활의 중심을 잡는 방법이기도 하다. 내가 사랑하는 티라미수는 달기만 한 게 아니라 쓴맛도 나야 하니까. 그래야 한 스푼 듬뿍 떠서 입에 넣었을 때, 달콤함의 시너지를 끌어올려 더욱 깊은 맛을 낼 수 있는 법이다.
오늘 잉크는 초콜릿은?
술을 못 해서 디저트로 2차를 가는 것을 선호하는 김지은 기자가 늘어놓는 가벼운 수다 같은 에세이입니다. 팍팍한 일상에 지치셨나요? 김 기자가 풀어내는 달콤한 이야기를 한겨레 오늘의 스페셜(https://www.hani.co.kr/arti/SERIES/3318?h=s)에서 만나보세요!
김지은 기자 quicksilv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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