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복길 대중문화평론가가 화제의 방송을 깊게 들여다봅니다.




KBS '은수 좋은 날'. KBS 제공


‘베테랑’ ‘강남 B사이드’ ‘야당’ 등 근래의 한국 창작물에서 마약은 정치인, 재벌과 같은 특정 계급의 폐쇄적 특권을 보여주는 매개였다. 실존 인물이 연루된 마약 사건을 떠올려보면 충분히 설득력 있는 설정이지만 마약을 정의 구현을 위한 명분으로 삼아 부패한 권력을 응징하는 이 작품들의 문법은 마약에 중독된 개인의 절망이나 그로 인한 사회적 고립을 다루는 데에는 그리 효과적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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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 주연의 KBS2 드라마 ‘은수 좋은 날’ 역시 마약을 소재로 삼고 있다. 전직 은행원이자 현직 마트 노동자인 은수(이영애)는 남편의 췌장암 진단으로 인해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가장이 된다. 설상가상 남편의 투자 실패로 집까지 잃을 위기에 처한 은수는 주거비와 치료비를 구하기 위해 발버둥을 치지만 상황은 쉽게 나아지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온라인 릴게임 정보
은수의 앞에 운명을 바꿀 만큼 커다란 사건이 벌어진다. 경찰을 피해 도망치던 한 마약 밀매범이 은수의 집 베란다에 대량의 마약이 든 가방을 놓고 떠난 것이다.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마약을 얻게 된 은수는 우연히 딸 학교의 교사인 이경(김영광)이 마약 브로커라는 것을 알게 되고 그에게 접근해 위험한 동업을 시작한다.
‘은수 좋은 날’은 이 과gs홈쇼핑 주식
정에서 마약 거래가 성사되는 일회성 메신저, 밀매를 위해 사용되는 은어, 마약이 전달되는 장소, 환각 상태에 빠진 인물과, 경찰의 단속을 따돌리는 방법들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며 마약이 파급되는 과정을 사실적이고 구체적으로 쌓아 올린다. 방영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이러한 장면들이 단순히 장르적 쾌감을 위한 오락적인 장치인지, 주인공의 딜레마를 부각하알라딘먹튀
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인지는 단정 지을 수 없다. 다만 ‘은수 좋은 날’은 스릴 넘치는 마약 거래와 대비를 이루는 은수의 고통스러운 상황을 비중 있게 다루며, 사건보다 은수라는 인물에게 무게를 싣는다.



KBS '은수 좋은 날'. KBS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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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수는 첫 마약 거래에 성공하고 500만 원이라는 큰돈을 갖게 된다. 성실하고 올곧은 품성을 가진 인물로 묘사됐기에 화장실에 숨어 앉아 돈을 세며 ‘마트에서 석 달을 일해도 못 버는 돈’이라 읊조리는 그의 모습은 어쩐지 슬프고 불편하다. 그의 절박한 처지를 이해하는 것과, 그가 저지른 범죄를 정당화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기 때문이다. 작품은 그러한 시청자의 딜레마를 분산하기 위해 정체가 모호한 마약 브로커 이경과 마약반 형사 장태구(박용우)를 등장시킨다. 이들의 개입은 은수에 대한 시청자의 도덕적 판단을 잠시 유보하게 만들지만 끝내는 은수의 선택이 미치는 파장을 드러내는 존재로서 작품의 딜레마를 추궁하고 메시지를 증폭하는 역할을 해낸다.
이렇듯 ‘은수 좋은 날’은 ‘마약은 불법’이라는 메시지를 관철하면서도 개인의 삶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선택과 판단에 접근하는 작품이다. 픽션은 고발성 르포가 아니기에 비윤리적인 선택을 한 인물에게서도 이해와 타협을 끌어낼 수 있다. 따라서 우리는 은수의 마약 밀매를 긍정하지 않고도 한 개인을 불법적인 일에 뛰어들게 만드는 환경의 취약성과 나아가 마약 중독을 일으키는 조건에 대해 질문하는 것도 가능하다.
제목의 모티프가 된 ‘운수 좋은 날’의 결말을 떠올린다면, 은수가 감내한 고통스러운 선택은 비극으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 남편의 병은 낫지 않고, 은수는 마약 사범이란 낙인을 받은 채 ‘마약은 불법입니다’라는 교훈만을 남길지도 모른다. 그러나 작품이 어떤 결말을 향해 가더라도 은수의 선택에서 시작된 질문을 놓지만 않는다면 이 이야기는 마약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다루는 수사극에 머물지 않고 타인에 대한 이해와 타협을 넓히는 기회의 장이 될 것이다. 사회적 안전망이 무너진 순간 인간은 어떤 현실을 마주하게 되는가? 생존에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선택을 하는 이들은 모두 악한가? 쾌락에 중독되었다는 것은 처벌의 대상이 될 수 있는가? 우리는 절망에 빠진 개인을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는가?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건 내 삶과 다른 삶을 마주했을 때, 내가 얼마나 흔들릴 수 있는지를 연습하는 이야기일지 모른다.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