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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로 터진 내숭 시리즈, 대중 끌고 기업과 컬래버로 한국화 새 길 열어 미 메트로폴리탄 최연소 전시…각종 국제 무대 수상으로 작품성 증명
‘한국화의 아이돌’ 김현정 화가는 한복 입은 미인의 이중성을 해학으로 풀어낸 '내숭 시리즈'로 세계적인 작가 반열에 오른 인물이다. [사진 김현정 화가]
한복 차림의 여인이 빨대를 젓가락 삼아 집어든 프렌치프라이를 당장 삼킬 태세다. 다른 손에는 반쯤 먹은 햄버거가 들려 있고 작은 상 위에 포장 벗긴 햄버거와 음료수, 프렌치프라이가 놓여있다. 영혼 없는 우리들생명과학 주식
표정과 여인 앞에 놓여 있는 햄버거 세트가 2인분이란 게 ‘킬포(킬링 포인트)’다. 한복 차림에 비녀까지 꽂은 여인의 모습이 마치 무료함에 젖어 있는 ‘마나님’ 같다. 요즘 뜨는 한국화가 김현정의 작품 〈내숭: 투혼〉이다.
“야작(야간작업) 때 야식으로 햄버거 세트를 주문했어요. 근데 한국화는 수채화와 비슷해서 기름기가 묻으면 안 되거든바다이야기 게임방법
요. 그래서 빨대를 쥐어 어떻게든 먹으려다가 문득 그런 저 자신이 우스워졌죠. 그걸 담아낸 거예요.” 김현정은 자신을 대표하는 ‘내숭 시리즈’의 작품 중 하나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겉과 속이 투명하게 같은 인간이 세상사 어디 있겠냐만 김 화가는 그런 당연한 것을 오히려 해학으로 풀어낼 소재로 본 것이다.
한복과 현대의 일상을 담은 적금추천
내숭 시리즈는 ‘한국적인 정서를 가장 세련된 방식으로 재해석한다’는 메시지를 제시했는데, 이는 기성의 브랜드 이미지를 차별화하려는 기업들의 홍보 전략과 맞아떨어져 여러 차례 컬래버레이션이 이뤄졌고 자연히 대중들에게도 알려졌다. 예술계에 정통하지 않더라도 찾아보면 이게 김 화가가 그린 거구나 할 법한 작품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우리카드 ‘카드의 정석’의 모란알라딘온라인릴게임
꽃으로 디자인한 배경 패턴이 있다. 이 외에도 슈퍼마켓 가판대에 있는 해태제과의 연양갱 패키지의 시리즈로 된 한국화 그림이라든가, 2019년 MBC 연기대상의 BI 디자인과 브리지 영상 등에 김 화가의 작품이 적용됐다.
이를 통해 인지도를 쌓은 김 화가는 2016년 뉴욕 메트로폴리탄에서 개인전을 연 최연소 한국인이 됐으며, 이듬해 포브스추세연구소수익률
에서 주관하는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30세 이하 30인’에 선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예술가의 탄생은 남모를 산고(産苦)가 필연적인 법이고, 김 화가라고 해서 그런 과정 없이 스타덤에 오른 것은 아니었다. 학창시절 그는 선화예중·고를 졸업한 뒤 서울대 동양화과에 입학했다. 이후에는 경영학을 복수전공했다. 약력만 보자면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다. 반대로 보면 유년기부터 같은 목표를 가진 예술계의 수재들과 경쟁하는 데 익숙한 환경에서 버텨온 것이다.
“8살 때부터 입시미술 학원에 다녔어요. 거창한 뜻이 있어서라기보다 일찍이 미술을 시작한 언니 따라갔던 거죠. 그래서 얼굴이며 손에 물감을 묻혀가며 입시 전쟁을 치르는 풍경이 어릴 때부터 익숙했어요.”
━
1등, 1등, 1등만 바라던 학창시절
김 화가는 중학교 입학부터 실기 시험과 면접을 치르는 전쟁통을 겪었다. 붓질하느라 손가락에 못이 박이고 물집이 잡히는 건 자랑거리도 못 됐다.
“1등만 생각했어요. 1등만. 그런데 예술계에서 음악과 무용은 타고난 천재가 계속 1등을 하는 구조라면 미술은 시험 주제나 소재에 따라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해요. 그러니 연습 말고는 답이 없었죠.”
처음부터 동양화를 하고자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하다면 서양화나 디자인 계열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부터 동양화에 소질 있다는 평가와 더불어 스스로도 감각이나 체질적인 측면에서 맞다고 판단했다. “화선지에 스며드는 먹의 번짐과 그 위로 스며드는 색감에서 충격을 받았죠. 아, 이런 미술도 있구나.”
한국화의 대가인 김홍도와 신윤복 선생의 풍속화에서도 충격은 이어졌다. 서양화에선 미장센이라는 내러티브 기법이 있다. 인물의 구도와 포즈, 사물의 배치 등으로 작품의 서사를 은연중에 암시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풍속도에도 비슷한 기법이 있다. 서양화가 다소 숨 막힐 정도로 정교하다면, 우리는 좀 느슨하면서도 여유로운 게 차이다. 그래서 웃음도 있고 해학도 있다. 다른 말로 운치(韻致)라고도 한다.
“하지만 고3 현역 때 서울대에서 떨어졌어요. 인생의 첫 실패였죠.”
곧 우울감이 찾아왔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건 남들의 시선이었다. 매번 순위를 매기는 경쟁 체제다보니 시기와 질투가 많은 분야다. 그런 게 싫어서 더 악착같이 붓을 잡았고 결국엔 선화예고 미술과 실기수석으로 졸업했으나 정작 중요한 무대인 입시에서 실패했다. 정신적으로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당시 심리상담가에게 스무살인 김 화가가 털어놓은 대목이다.
‘나는 유리 파편이 깔린 무대 위에 맨발로 서 있다. 관객 모두가 내게 손가락질하지만 어쨌든 나는 그걸 지르밟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듬해 보란 듯이 서울대 동양화과에 합격했지만 패배감을 완전히 떨쳐내기까지 2년이 더 걸렸다. 심리를 치유하게 된 장소는 작업실이었다. 인간의 양면성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보자고 생각했다. 앞에선 웃는 얼굴로 다가오지만, 뒤에선 가면을 벗고 흉보는 인간들. 고상한 체하지만 누구보다 고상하지 못한 사람들. “한복을 입으면 조신해지잖아요. 그래서 한복 입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행위를 하는 모습으로 한번 꼬집어보고 싶었죠.” 그러니 내숭 시리즈는 원래 김 화가가 경멸하는 인간군상을 비판하고자 탄생했던 셈이다.
그런데 내숭 시리즈 개인전을 보러 온 관람객의 한 마디에 그는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그림 속 인물들이 다 작가님을 닮았네요’라는 말이었다. “비몽사몽인 상태로 작업하느라 생김새는 개의치 않고 그렸는데 그 말을 듣고 자세히 보니까 제 얼굴인 거예요. 그때 깨달았죠. 내숭이란 건 사실, 고백적인 자화상이구나. 이건 내 얘기였구나. 그걸 인정하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때부터 제 작품이 남들에게 유쾌하게 보이길 바라게 됐죠.”
김현정, '내숭: 투혼',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111x129.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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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로 인기 폭발한 내숭 시리즈
그렇다면 한국화를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었을까? 엄밀히 말해 미술은 배고픈 직업으로 인식되는 데다 미술품도 의식주가 아닌 터라 극히 일부인 컬렉터들이 아니면 고객도 얼마 없다. 경영학을 복수 전공한 것도 미술 시장을 알고 싶어서였다.
“미술시장을 제대로 연구하려면 경제학으로 갔어야 했죠. 당시엔 그런 것도 잘 모를 정도로 미술 아니면 다른 분야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은 길이었다. 경영학과는 주로 영어 원서로 공부하는데 다른 학생이 2시간 걸려서 이해할 내용이면 김 화가는 20시간을 꼬박 집중해도 반의 반도 이해가 안 됐다. 더군다나 예체능과 학생은 이상하게 교내에서 무시당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조별 과제를 하면 발표나 자료 조사는 다른 조원이 할 테니 프레젠테이션 제작이나 맡기는 식이었다. 그래도 오기로 버텼다. 공부 할당량을 못 채우면 못 자는 거고 하기로 한 건 해내야 한다. 거기다 복수전공 과목에 혈안이 돼서 정작 본과에는 집중을 못 한다는 비판도 나와선 안 된다.
“그래도 미술계에서 성공하는 공식을 나름대로 구할 수 있었어요.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고 전시된 여러 화가의 작품 수를 계산해보니 성공하려면 최소 2000점은 그려내야 하더라고요. 피카소는 1만3500여 점을 남겼으니 그보단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적은 숫자는 아니죠.”
결국 김 화가는 서울대 미대를 차석으로 졸업했다. 그래서 총동창회장상을 받았는데 개인적으론 그 어떤 이력보다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성과라고 한다.
김 화가를 알린 ‘내숭 시리즈’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파급력의 영향이 컸다. 대학 졸업 후 종로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연 그녀는 어느 날 이면도로를 꽉 채울 정도의 인파가 몰린 것을 보고 놀랐다. 실력에는 자신 있었지만, 갓 학생 딱지를 뗀, 회사원으로 치면 ‘수습’인 그다. 사람을 끌어모을 명성이나 인지도가 있을 리 만무했고, 아무리 작품이 인상 깊다고 한들 전시회가 있는 화랑이 즐비한 인사동이다. 한데 자신의 개인전에만 유독 사람이 몰리는 게 스스로도 의아했다.
'내숭: 신십장생도(feat. 해태제과 연양갱)',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85x59㎝, 2021. [사진 김현정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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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목표는 재단 설립
마침 한복 차림도 아니었고 며칠째 개인전 때문에 녹초가 된 모습에 일견 전시회 직원으로도 보이는 터라, 김 화가는 관람객 한 명에게 다가가 “어떻게 알고 오셨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관람객은 “미술 동호회 카페가 있는데 회원 하나가 그림이 재밌으니 보러 가라고 추천해서 왔다”고 했다.
“그때 생각했죠.” 김 화가는 회고했다. “SNS 힘이 엄청나게 세구나.”
그래서 블로그와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어 자신의 작품을 업로드하기 시작했고, 어느덧 페이스북 친구 5000명을 채웠다. 추가로 팬 페이지를 개설했는데 이내 팔로어 10만 명을 훌쩍 넘기게 됐다. 이런 영향력을 실감한 평단은 그에게 ‘한국화의 아이돌’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한국화가라고 하면 나이 지긋한 남성 이미지가 있는데 그런 통념을 탈피한 데다, 수많은 대중을 끌어모으는 능력을 갖췄으니, 소수 취향으로 인식되던 한국화를 부흥시킬 재목으로 봤던 것이다.
김현정, '내숭:달려가마(馬)',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127x183㎝, 2015.
〈내숭: 달려가마(馬)〉는 한복을 입은 기수가 역동적인 승마 포즈를 취하며 말을 타고 달리는 그림이다. 한국마사회가 지난 2015년 기획한 ‘신(新)기마 미인도’ 프로젝트를 담당했을 때 제작한 달력 그림의 일부로, 이를 통해 김 화가는 홍보 콘텐트 디자인을 평가하는 세계적인 어워드 ‘아스트리드’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그런가 하면 김홍도의 〈서당〉을 현대판으로 재해석하여 메가스터디 그룹의 손주은 회장의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라던가, 닥터드레 헤드셋을 착용하고 음악을 듣는 모습 등 모두 내숭을 기초로 기업들과 컬래버한 작품들이다.
“일이 엄청나게 들어왔죠. 어진(御眞·왕의 얼굴) 기법으로 얼굴을 그려 달라는 의뢰까지 있었어요.”
제작 과정은 복잡하다. 작품 속 인물의 실루엣을 표현하고자 누드와 한복 차림으로 각각 포즈를 취해 사진을 촬영하고, 이를 한지에다 스케치한 뒤 수묵과 담채로 색채를 입힌다. 그런 다음 직접 염색한 한지를 그림에 붙이는데 여기서 품이 가장 많이 든다. 마지막으로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까지 해서 작품 한 편을 완성하는 데 통상 두어 달은 걸린다.
“작품은 제 자식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환경에 팔리면 그래도 안심하고 입양 보내는 기분이죠. 기왕이면 좋은 데 보내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잖아요.”
그래서 화가로서 최종 목표는 자신의 재단을 만드는 것이다. 앤디 워홀이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본인의 재단을 만들어 사후에도 작품들을 관리해 대중의 관심과 기억에 잊히지 않도록 꾸준히 전시하기 때문이라고.
김 화가는 인터뷰가 끝난 뒤 야작을 해야 한다며 서둘러 짐을 쌌다. 9월 15일부터 11월 17일까지 이대서울병원에서 전시회를 여는데, 환자들의 기운을 북돋는 기획을 고심 중이라고 한다. “제 작품을 보고 잠시라도 유쾌해지길 바라죠. 삶에 치여 살더라도 일상의 해학을 마주함으로써 힘을 얻으셨으면 해요.”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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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때부터 입시미술 학원에 다녔어요. 거창한 뜻이 있어서라기보다 일찍이 미술을 시작한 언니 따라갔던 거죠. 그래서 얼굴이며 손에 물감을 묻혀가며 입시 전쟁을 치르는 풍경이 어릴 때부터 익숙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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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등만 생각했어요. 1등만. 그런데 예술계에서 음악과 무용은 타고난 천재가 계속 1등을 하는 구조라면 미술은 시험 주제나 소재에 따라 순위가 엎치락뒤치락해요. 그러니 연습 말고는 답이 없었죠.”
처음부터 동양화를 하고자 마음먹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익숙하다면 서양화나 디자인 계열이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부터 동양화에 소질 있다는 평가와 더불어 스스로도 감각이나 체질적인 측면에서 맞다고 판단했다. “화선지에 스며드는 먹의 번짐과 그 위로 스며드는 색감에서 충격을 받았죠. 아, 이런 미술도 있구나.”
한국화의 대가인 김홍도와 신윤복 선생의 풍속화에서도 충격은 이어졌다. 서양화에선 미장센이라는 내러티브 기법이 있다. 인물의 구도와 포즈, 사물의 배치 등으로 작품의 서사를 은연중에 암시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풍속도에도 비슷한 기법이 있다. 서양화가 다소 숨 막힐 정도로 정교하다면, 우리는 좀 느슨하면서도 여유로운 게 차이다. 그래서 웃음도 있고 해학도 있다. 다른 말로 운치(韻致)라고도 한다.
“하지만 고3 현역 때 서울대에서 떨어졌어요. 인생의 첫 실패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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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듬해 보란 듯이 서울대 동양화과에 합격했지만 패배감을 완전히 떨쳐내기까지 2년이 더 걸렸다. 심리를 치유하게 된 장소는 작업실이었다. 인간의 양면성을 주제로 그림을 그려보자고 생각했다. 앞에선 웃는 얼굴로 다가오지만, 뒤에선 가면을 벗고 흉보는 인간들. 고상한 체하지만 누구보다 고상하지 못한 사람들. “한복을 입으면 조신해지잖아요. 그래서 한복 입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행위를 하는 모습으로 한번 꼬집어보고 싶었죠.” 그러니 내숭 시리즈는 원래 김 화가가 경멸하는 인간군상을 비판하고자 탄생했던 셈이다.
그런데 내숭 시리즈 개인전을 보러 온 관람객의 한 마디에 그는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그림 속 인물들이 다 작가님을 닮았네요’라는 말이었다. “비몽사몽인 상태로 작업하느라 생김새는 개의치 않고 그렸는데 그 말을 듣고 자세히 보니까 제 얼굴인 거예요. 그때 깨달았죠. 내숭이란 건 사실, 고백적인 자화상이구나. 이건 내 얘기였구나. 그걸 인정하고 나니까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때부터 제 작품이 남들에게 유쾌하게 보이길 바라게 됐죠.”
김현정, '내숭: 투혼',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111x129.5㎝,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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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화를 선택한 것에 후회는 없었을까? 엄밀히 말해 미술은 배고픈 직업으로 인식되는 데다 미술품도 의식주가 아닌 터라 극히 일부인 컬렉터들이 아니면 고객도 얼마 없다. 경영학을 복수 전공한 것도 미술 시장을 알고 싶어서였다.
“미술시장을 제대로 연구하려면 경제학으로 갔어야 했죠. 당시엔 그런 것도 잘 모를 정도로 미술 아니면 다른 분야에는 관심이 없었어요.”
하지만 그 또한 쉽지 않은 길이었다. 경영학과는 주로 영어 원서로 공부하는데 다른 학생이 2시간 걸려서 이해할 내용이면 김 화가는 20시간을 꼬박 집중해도 반의 반도 이해가 안 됐다. 더군다나 예체능과 학생은 이상하게 교내에서 무시당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조별 과제를 하면 발표나 자료 조사는 다른 조원이 할 테니 프레젠테이션 제작이나 맡기는 식이었다. 그래도 오기로 버텼다. 공부 할당량을 못 채우면 못 자는 거고 하기로 한 건 해내야 한다. 거기다 복수전공 과목에 혈안이 돼서 정작 본과에는 집중을 못 한다는 비판도 나와선 안 된다.
“그래도 미술계에서 성공하는 공식을 나름대로 구할 수 있었어요.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소장되고 전시된 여러 화가의 작품 수를 계산해보니 성공하려면 최소 2000점은 그려내야 하더라고요. 피카소는 1만3500여 점을 남겼으니 그보단 사정이 나은 편이지만 그렇다고 적은 숫자는 아니죠.”
결국 김 화가는 서울대 미대를 차석으로 졸업했다. 그래서 총동창회장상을 받았는데 개인적으론 그 어떤 이력보다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성과라고 한다.
김 화가를 알린 ‘내숭 시리즈’가 세간의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파급력의 영향이 컸다. 대학 졸업 후 종로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연 그녀는 어느 날 이면도로를 꽉 채울 정도의 인파가 몰린 것을 보고 놀랐다. 실력에는 자신 있었지만, 갓 학생 딱지를 뗀, 회사원으로 치면 ‘수습’인 그다. 사람을 끌어모을 명성이나 인지도가 있을 리 만무했고, 아무리 작품이 인상 깊다고 한들 전시회가 있는 화랑이 즐비한 인사동이다. 한데 자신의 개인전에만 유독 사람이 몰리는 게 스스로도 의아했다.
'내숭: 신십장생도(feat. 해태제과 연양갱)',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85x59㎝, 2021. [사진 김현정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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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목표는 재단 설립
마침 한복 차림도 아니었고 며칠째 개인전 때문에 녹초가 된 모습에 일견 전시회 직원으로도 보이는 터라, 김 화가는 관람객 한 명에게 다가가 “어떻게 알고 오셨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관람객은 “미술 동호회 카페가 있는데 회원 하나가 그림이 재밌으니 보러 가라고 추천해서 왔다”고 했다.
“그때 생각했죠.” 김 화가는 회고했다. “SNS 힘이 엄청나게 세구나.”
그래서 블로그와 페이스북 계정을 만들어 자신의 작품을 업로드하기 시작했고, 어느덧 페이스북 친구 5000명을 채웠다. 추가로 팬 페이지를 개설했는데 이내 팔로어 10만 명을 훌쩍 넘기게 됐다. 이런 영향력을 실감한 평단은 그에게 ‘한국화의 아이돌’이란 수식어를 붙였다. 한국화가라고 하면 나이 지긋한 남성 이미지가 있는데 그런 통념을 탈피한 데다, 수많은 대중을 끌어모으는 능력을 갖췄으니, 소수 취향으로 인식되던 한국화를 부흥시킬 재목으로 봤던 것이다.
김현정, '내숭:달려가마(馬)', 한지 위에 수묵과 담채, 127x183㎝, 2015.
〈내숭: 달려가마(馬)〉는 한복을 입은 기수가 역동적인 승마 포즈를 취하며 말을 타고 달리는 그림이다. 한국마사회가 지난 2015년 기획한 ‘신(新)기마 미인도’ 프로젝트를 담당했을 때 제작한 달력 그림의 일부로, 이를 통해 김 화가는 홍보 콘텐트 디자인을 평가하는 세계적인 어워드 ‘아스트리드’에서 은상을 수상했다. 그런가 하면 김홍도의 〈서당〉을 현대판으로 재해석하여 메가스터디 그룹의 손주은 회장의 강의를 듣고 있는 학생들의 모습이라던가, 닥터드레 헤드셋을 착용하고 음악을 듣는 모습 등 모두 내숭을 기초로 기업들과 컬래버한 작품들이다.
“일이 엄청나게 들어왔죠. 어진(御眞·왕의 얼굴) 기법으로 얼굴을 그려 달라는 의뢰까지 있었어요.”
제작 과정은 복잡하다. 작품 속 인물의 실루엣을 표현하고자 누드와 한복 차림으로 각각 포즈를 취해 사진을 촬영하고, 이를 한지에다 스케치한 뒤 수묵과 담채로 색채를 입힌다. 그런 다음 직접 염색한 한지를 그림에 붙이는데 여기서 품이 가장 많이 든다. 마지막으로 정교하게 다듬는 과정까지 해서 작품 한 편을 완성하는 데 통상 두어 달은 걸린다.
“작품은 제 자식이라고 생각해요. 좋은 환경에 팔리면 그래도 안심하고 입양 보내는 기분이죠. 기왕이면 좋은 데 보내고 싶은 게 부모의 마음이잖아요.”
그래서 화가로서 최종 목표는 자신의 재단을 만드는 것이다. 앤디 워홀이 명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본인의 재단을 만들어 사후에도 작품들을 관리해 대중의 관심과 기억에 잊히지 않도록 꾸준히 전시하기 때문이라고.
김 화가는 인터뷰가 끝난 뒤 야작을 해야 한다며 서둘러 짐을 쌌다. 9월 15일부터 11월 17일까지 이대서울병원에서 전시회를 여는데, 환자들의 기운을 북돋는 기획을 고심 중이라고 한다. “제 작품을 보고 잠시라도 유쾌해지길 바라죠. 삶에 치여 살더라도 일상의 해학을 마주함으로써 힘을 얻으셨으면 해요.”
안덕관 월간중앙 기자 ahn.deokkw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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