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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도널드 웨스트레이크의 소설 ‘액스’를 읽고 나서 원작보다 웃기게 만들 가능성이 많이 보였어요. 그래서 꼭 영화로 만들고 싶었죠.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던 건 어느 시기든 어느 나라 사람이든 공감하면서 시의적절한 이야기라고 반응하는 걸 들었기 때문입니다.”
24일 개봉한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박찬욱 감독의 오랜 염원인 프로젝트다. 2005년 먼저 영화화하며 판권을 확보한 그리스 출신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아내 미셸 가브라스의 주도로 미국에서 먼저 제작을 추진했으나 제작비 문제로 중단됐고 한국으로 방향을 틀어 완성될 수 있었다. 전날 서울 종로구증권수수료저렴한곳
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 감독은 “제 영화를 보고 가브라스 감독과 미셸 여사가 무척 좋아해줬고 저도 뭉클했다”고 말했다.
박 감독과 이병헌이 장편영화로는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25년 만에 다시 뭉쳐 화제를 모은 ‘어쩔수가없다’는 개봉 전 예매 티켓만 40만 장을 기록하며 첫날 박스오피스에서도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박 감독의 영화엠에스씨 주식
중 가장 유머러스한 작품으로 꼽히는 이 작품에 대해선 베네치아, 토론토, 부산 등 국제영화제에선 극찬이 쏟아졌으나, 국내 관객 사이에선 “블랙코미디의 정수” “연기도 연출도 예술” “살인의 개연성이 떨어진다” “후반부로 갈수록 힘이 떨어진다” 등 평가가 엇갈린다.

중산층 욕망 그린 올해의 '기생충'
다빈치



영화 '어쩔수가없다'를 연출한 박찬욱 감독은 "주연배우 이병헌에게 처음 시나리오를 줬더니 첫 반응이 '웃겨도 되냐'는 질문이었고 그래서 '웃길수록 좋다'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CJ ENM 제공


‘어쩔수가없다’는 가브라스의 영화 ‘액에넥스 주식
스, 취업에 관한 위험한 안내서’를 가볍게 뛰어넘는 역작이다. 제지회사에 다니다 갑자기 실업자가 된 중년 남성 만수(이병헌)가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를 하나둘 제거한다는 단순한 내용이지만 범죄 스릴러와 블랙코미디라는 익숙한 장르적 틀 뒤에 자본주의 시스템의 부조리, 중산층의 부풀려진 욕망과 왜곡된 남성성, 가족을 지킨다는 당위성과 보편적 윤리의 충돌이라는 다파워스톡
층적 텍스트를 심어 생각할 거리를 안긴다.
박 감독은 여기에 다양한 상징과 은유를 더하고 수수께끼 같은 암호도 곳곳에 배치하며 곱씹을수록 의미가 풍성해지는 우아한 소동극을 완성했다. 영국 BBC는 “미치도록 재미있는 이 걸작 영화는 올해의 ‘기생충’”이라고 평하기도 했는데, 박 감독은 계급 문제를 다룬 블랙코미디라는 점에서 “그렇게 볼 수도 있을 것”이라면서 “중산층에 속한 사람들이 기를 쓰고 전락을 피하려는 속물적인 욕망을 보여준다”고 했다.
권선징악적 관점을 피한 덕에 관객은 주인공 만수를 응원하면서 공범이 되지만 윤리적 딜레마를 앞에 두곤 감정이입에서 벗어나기도 한다. 박 감독도 “관객이 만수에게 공감하다가도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보기도 하면서 혼란스럽게 느끼기를 바랐다”고 했다. 원작과 가장 큰 차이점도 만수의 범죄를 가족이 알게 되면서 천천히 무너진다는 점이다. “가족을 지키겠다며 저지른 행동이 오히려 가족을 붕괴시키는 패러독스”는 박 감독이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긴 부분이기도 하다.

이병헌 "윤리적 딜레마 만수, 관객 설득 어려웠다"



영화 '어쩔수가없다' 중 한 장면. CJ ENM 제공


‘어쩔수가없다’는 이병헌의 섬세한 연기력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박 감독도 만수의 행동을 관객에게 설득하기 위해 이병헌이 꼭 필요했다고 했다. 박 감독은 “관객이 차분하게 만수를 따라가면서 공감하다가도 어떤 때는 거리를 두고 비판적으로 관찰하려면 우선 만수에게 홀딱 넘어가야 하는데 이병헌이라는 배우는 눈만 봐도 설득되는 힘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튿날 같은 장소에서 만난 이병헌은 “윤리적 딜레마를 겪는 만수를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에게 설득시킬 수 있도록 연기하는 게 어려웠다”면서도 “어쩌면 내 출연작 중 가장 자랑하고 싶은 작품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하는 기분 좋은 추측도 하게 된다”고 말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이병헌은 때로 만수의 우스꽝스러운 면모를 보여주며 웃음을 자아낸다. 그는 “슬랩스틱이라고 생각하며 연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면서도 “촬영 현장에서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많이 냈는데 80%는 영화에 쓰인 듯하다”며 웃었다. BH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는 직업이 개인의 정체성과 삶의 의미를 완전히 삼켜버리기도 하는 자본주의 사회의 현실을 비춘다. 세계 최고의 영화인으로 사는 두 사람에게 일이란 어떤 의미일까. “만수처럼 저도 연기를 접한 뒤론 다른 일 안 하고 배우로만 살았어요. 그러니 하루아침에 연기를 못 하게 된다면 만수처럼 이제 뭘 해야 하지 막막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이병헌)
“직업인으로 정체성을 자기의 모든 것으로 삼는 이들이 어리석다고 묘사하고 있긴 하지만 영화를 못 만든다면 저도 죽은 목숨인가, 그럼 안 되는 거 아닌가 싶기도 해요. 사람의 정체성은 여러 요소로 구성돼 있으니까요. 그래서 제 삶에 있어서도 영화의 비중을 줄여가며 현명하게 살려고 합니다.”(박찬욱)
고경석 기자 kave@hankookilbo.com